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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칼럼

"이 냄새, 그 호텔이네"…향기로 브랜드를 각인 시키는 호텔들

by lifegonggam 2026. 8. 3.

 


잠 대신 기억을 파는 시대

호텔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은은하게 퍼지는 향, 객실 문을 열 때 훅 끼치는 낯설지만 편안한 냄새. 
체크아웃 후 몇 달이 지나도 어디선가 비슷한 향을 맡으면 그 호텔이 떠오른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우연이 아니다. 국내외 호텔들은 저마다 '시그니처 향'을 개발해 로비와 객실, 심지어 직원 향수까지 통일하는 '향기 마케팅'을 오래전부터 정교하게 운영해 왔다. 이제는 그 향을 그대로 담은 디퓨저나 캔들을 정식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향은 시각이나 청각과 달리 '기억'과 가장 강하게 연결된 감각으로 꼽힌다. 특정 냄새를 맡는 순간 관련된 장소와 감정이 함께 떠오르는 현상은 심리학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호텔업계가 향기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브랜드를 시각 이미지가 아니라 후각으로 각인시키면, 고객은 굳이 로고를 보지 않아도 "이 냄새, 그 호텔이네"라고 떠올리게 된다.


국내 최초는 '더 플라자'

국내 호텔 중 시그니처 향을 가장 먼저 도입한 곳은 더 플라자 호텔이다. 2010년 전면 리모델링 당시 호텔의 인테리어와 유니폼, 로고를 총괄한 디자이너의 제안으로 도심 속 자연을 표현한 유칼립투스 향을 호텔 전 공간과 직원 향수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투숙객들의 구매 문의가 이어지자 2016년, 국내 호텔 업계 최초로 이 향을 'P컬렉션'이라는 자체 브랜드의 디퓨저 상품으로 출시했다.

롯데호텔·시그니엘의 '워크 인 더 우드'

롯데호텔은 2019년부터 자체 개발한 '워크 인 더 우드(A Walk in the Woods)' 향을 시그니엘 등 주요 공간에 사용해왔다. 은은한 나무 향에 청량한 과실 향과 꽃 내음을 더한 이 향은 원래 호텔 내부용으로만 개발됐지만, 투숙객들의 문의가 폭주하면서 디퓨저 상품으로 출시됐다. 출시 이후 판매량은 꾸준히 늘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던 2021년에는 전년 대비 약 75% 증가했고, 이듬해 상반기에도 30% 이상 늘어나는 등 '집에서도 호텔 향을 느끼고 싶다'는 수요가 뚜렷하게 확인됐다. 이후 롯데호텔은 '임브레이싱 모먼트' 등 새 향도 선보이며 라인업을 넓히고 있다.


콘셉트를 향으로 완성하는 조선호텔앤리조트 계열

조선호텔앤리조트는 호텔마다 다른 시그니처 향을 개발해 브랜드 정체성을 세분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부티크 호텔 레스케이프는 프랑스 벨 에포크 시대를 모티브로 한 은은한 장미 향을 시그니처로 삼아, 프랑스 출신 조향사와 협업해 차량용 디퓨저와 버블바 등으로 확장했다. 그랜드 조선 부산·제주는 '더 모먼트', 그래비티 서울 판교는 '어웨이큰 20',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은 초록 잎의 상쾌함과 은방울꽃, 샌달우드, 앰버를 조합한 '라스팅 임프레션'을 각각 내세우며 지점별로 다른 향의 서사를 만들고 있다.


콜라보로 완성한 안다즈 서울 강남의 '854'

안다즈 서울 강남은 국내 코스메틱 브랜드 '탬버린즈'와 협업해 시그니처 향 '854'를 개발, 호텔 개장과 동시에 화제를 모았다. 향수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향 자체의 완성도와 화제성을 동시에 잡은 사례로 꼽힌다.


자연을 담은 워커힐과 파라다이스시티

워커힐은 2017년부터 오렌지와 재스민을 배합한 시그니처 향을 로비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주변 아차산 산책로의 자연경관에서 영감을 받아 새벽 숲과 이끼 냄새를 형상화했다는 설명이다. 복합리조트 파라다이스시티는 글로벌 향기 마케팅 기업 에어 아로마와 손잡고 시트러스, 나무, 버베나, 민트가 어우러진 '센트 오브 파라다이스'를 개발해 사용 중이다.


글로벌 체인들의 오랜 노하우

향기 마케팅은 해외 호텔 체인이 오히려 원조에 가깝다. 웨스틴 호텔은 전 세계 지점에서 백차(화이트 티)와 오키드를 조합한 향을 공통 시그니처로 써왔고, 이를 담은 '화이트 티 리드 디퓨저'는 국내에서도 대표적인 홈 프래그런스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트렌디하고 도시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W 호텔은 시트러스 계열의 활기찬 향으로 젊은 고객층을 겨냥하고, 만다린 오리엔탈은 '블랑 드 만다린'이라는 향을 전 세계 지점에 동일하게 적용해 브랜드 일관성을 높이고 있다. 우아한 화이트 티 향으로 잘 알려진 리츠칼튼 역시 향기를 브랜드 경험의 핵심 요소로 다뤄온 대표 사례로 꼽힌다.


향기가 파는 것은 결국 '재방문'

호텔들이 시그니처 향을 앞다퉈 디퓨저나 룸 스프레이 같은 자체 브랜드(PB) 상품으로 만드는 이유는 명확하다. 고유한 향을 갖는 것만으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고, 일상에서 그 향을 접한 고객이 자연스럽게 호텔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재방문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여행이 어려워졌던 시기, 집에서라도 호텔의 향을 느끼고 싶어 하는 수요가 늘면서 관련 상품 판매가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향기 마케팅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향에 민감하거나 호흡기 질환이 있는 고객에게는 상시 발산되는 향이 오히려 불편할 수 있고, 유럽 등에서는 향료 성분의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을 이유로 실내 공기질 규제 차원에서 주변 향 사용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이지 않는 감각을 다루는 만큼, 향기 마케팅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진화할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침대의 폭신함이나 창밖 풍경은 사진으로 남길 수 있어도, 향기는 오직 그 공간에 머물러야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호텔들은 오늘도 '보이지 않지만 가장 오래 남는' 이 감각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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